어느 날 우연히 야마나카 히사시의 동화 ‘내가 나인 것’ 을 만나게 되었다. ‘가장 뛰어나다’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히데카즈. 이름과는 달리 밤낮으로 엄마의 잔소리와 동생의 고자질 에 시달리며 실수만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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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형편없는 애야’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며 오히려 잔소리할 때면 생기가 도는 엄마. 결국 “넌 가출도 못할 거야” 라는 말에 울컥 가출을 하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뉘우치며 돌아오는 보통의 동화와 달리 뛰쳐나간 히데카즈는 점차 시끄러운 주변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아간다.

 ‘엄마는 나를 때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을 거야. 누가 뭐래도 나는 엄마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겠어. 그리고 나는 나라는 것도 알려주겠어!’




 

 히데카즈가 성장한 것은 바로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꾸중도 크게 보아 잔소리라고 본다면 사실 잔소리 없이 큰 아이가 있을까?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잔소리였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잔소리는 유아기, 아동기에 ‘기초생활습관형성’의 주역이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화의 기능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옛날 시어머니의 잔소리 없이 며느리의 살림솜씨가 그렇게 늘 수 있었을까, 또 고참의 꾸지람 없이 신참이 제대로 일을 배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될 성 싶은 싹이라면 다른 싹보다 모질게 밟아줘야 한다지 않는가. 당시엔 힘들어도 더 튼튼한 뿌리를 가지게 하는 것이 잔소리이다.


 하지만 잔소리란 결국 위에서 권위로 내리 누르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반응은 다 다르겠지만 눌릴수록 움츠러들게 되고 심하면 자신에 대한 책임을 잃게 된다. 히데카즈는 가출조차 주변에 의한 것이었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 또한 계속 반복되고 더구나 별 ‘쓸모없는’ 잔소리는 점차 마음의 문을 닫게 한다. 내가 무슨 말을 듣게 될 지 뻔 한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오히려 들을수록 마음속에 분노와 반감만 쌓이게 된다. 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아버지가 야단을 치는 동안 마음속으로 XX하고 욕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머리를 딱 때리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XX야! 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묘한 기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내가 잔소리를 안 하며 또는 안 들으며 살 수 있을까? 그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 열심히 말하는 내 앞에서 들은 척도 안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든지 속으로 XX를 외치고 있는 아이들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랬구나. 나더러 쓰레기라느니 머저리라느니 무섭게 겁을 줘도 사실은 젖먹이나 다름없었구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울부짖고 있어.’



 잔소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구를 일방적으로 늘어놓거나 자신의 감정을 분출시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배려와 상대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한다. 손에 잡힐 듯 한 말은 아니지만 결국 답은 스스로의 또 상대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향한다. 한 선배가 예비교사로서 가장 좋은 준비는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있었다. 너무 욕심 부려 내 뜻대로 하려고 울부짖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더 나은 것을 향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또 나에게 쏟아지는 잔소리들이 스트레스의 근원이 아니라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더욱더 도를 닦아나가야겠다.

Posted by s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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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정냥 2009.09.13 09:5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와 나도 이 책 읽었었는데..